둔전말
2021. 6 . 30
내고향
둔전말.
아니 나의 아버지 고향이라고 말해야 맞는 것 같다.
나는 둔전말 짱지밑에서
초등학교 4,5,6학년
그리고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.
장마가 시작 되었는가?
연 3일째 동남아 수준의 스콜이 연속으로 내린다.
오늘은 어떨지?
코로나19 핑계로
한식에도 성묘도 못하고 해서
오늘은 둔전말 선산으로 엄마 아빠 만나러 간다.
오랜만에
금년도 1/2이 지나고
세월은정말 빠르게 지나가기민하네.
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?
이 마을은 조선조(朝鮮朝) 말까지는 양촌리(陽村里)ㆍ둔리(屯里)ㆍ벌리(筏里)등 3개 자연부락을 행정구역으로 하였으나, 1914년 일제(日帝) 강점기(强占期)에 3개 마을을 통합하여 1개리로 구성하면서 마을 이름을 양촌의 '양'(陽)과 벌리의 '벌'(伐)을 따서 '양벌리'(陽筏里)라고 하였다.
이 마을은 오포읍에서 농경지(農耕地)가 가장 많고, 마을 앞을 흐르는 경안천(이 마을 앞 개천을 세피천(細皮川)이라고 칭하였음)의 풍부한 수량(水量)으로 수리안전답(水利安全畓)이 이루어진 옥답(沃畓)이 있어 예로부터 풍요로운 생활을 해 온 마을이다.
조선시대(朝鮮時代)에는 세피천(細皮川) 5일장(市場)이 섰던 곳이기도 하다. 『중정남한지』(南漢志)에 의하면 세피천장(細皮川場)은 每 1일과 6일에 5일장이 섰으며, 향청(鄕廳)에 속한다고 기록되어 있다. 즉 이 시장(市場)에서 사용료를 광주부(廣州府)에 속해 있는 향청(鄕廳)에서 수납하여 부(府)의 재정(財政)으로 썼다는 것이다. 또한 둔전말(屯田)은 수어청(守禦廳)에 속하는 둔전(屯田)이 많아 이 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남한산성(南漢山城) 수어청(守禦廳)으로 보내 군량미(軍糧米)로 충당하였다. 조선시대(朝鮮時代)에는 오포읍(五浦邑)의 중심지였다고 한다.
[출처] 경기도광주오포(둔전말유래)자료제공:광주시청
여기에 등장하는 꽃과 과일나무는
동생 내외가 정성들여 가꾼 작품이다..
독립공원의 오리가족 (0) | 2021.07.02 |
---|---|
금꿩의다리 (0) | 2021.07.01 |
유월은 백합의 계절 (0) | 2021.06.30 |
짱둥어 다리 (0) | 2021.06.29 |
ELDORADO RESORT (0) | 2021.06.28 |
댓글 영역